
봄바람이 살랑이는 요즘, 겨우내 든든했던 패딩을 집어넣고 가벼운 셔츠를 꺼냈습니다. 옷 하나 가벼워졌을 뿐인데 팔다리가 자유로워지는 그 해방감이란!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나처럼 작은 키를 가진 사람은 우주에 가면 어떨까?"
저는 여자치고도 키가 평균보다 작은 편이라 옷을 사면 소매나 바지 밑단을 치는 게 일상입니다. 가끔은 배보다 배꼽이 크다고, 수선비가 옷값만큼 나올 때면 속상한 마음이 듭니다. 그래서 한때는 "우주에 가면 척추가 늘어나 키가 커진다는데, 그럼 수선 안 해도 되는 모델 몸매가 되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상상을 하곤 했습니다. 편한 옷을 입을 순 없을까 싶기도 하구요. 우주복의 실체를 공부할수록, 그곳은 '옷핏'을 논할 곳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치열한 사투'의 공간임을 깨달았습니다.
우주복 내부의 공기압이 모든 불편함의 시작입니다
우주복은 옷이라기보다 사실상 '입는 우주선'에 가깝습니다. 현재 NASA에서 사용하는 선외 활동용 우주복(EMU)은 무려 18,000여 개의 부품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한 벌당 가격이 현재 가치로 약 1억 5천만 달러, 우리 돈으로 무려 2,000억 원에 달합니다(출처: Smithsonian Institution). . 제가 그토록 부러워하던 명품 옷들은 명함도 못 내밀 수준이죠.
하지만 이 비싼 옷의 사용자 경험(UX)은 최악입니다. 핵심은 바로 '공기압' 때문인데요. 지구의 1기압(100kPa)과 달리 우주복 내부는 약 40kPa 수준(출처: NASA)으로 유지됩니다. 기압 차이 때문에 우주복은 마치 빵빵하게 부푼 풍선처럼 변합니다.
예전에 사고로 손가락이 부러져 깁스를 한 적이 있습니다. 관절 하나가 마음대로 안 움직이는 그 답답함과 통증은 겪어보지 않으면 모릅니다. 그런데 우주복은 온몸을 깁스한 것과 다름없습니다. 팔 하나를 굽히는 것도 빵빵한 풍선을 억지로 구부리는 것만큼 힘이 듭니다. NASA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관절에 '베어링(Bearing)' 구조를 넣었지만, 기계적인 움직임일 뿐 사람의 실제 관절처럼 부드러울 리 없습니다. 밤늦게 침대에 누워 우주인이 바닥에 떨어진 물건 하나 줍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영상을 보니, 편한 잠옷 차림으로 노트북을 두드리는 제 일상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새삼 느껴졌습니다.
'새 다리' 현상과 입을 수 없는 청바지
키가 커지는 마법 같은 '척추 신장'도 우주에서는 결코 달콤하지 않습니다. 중력이 사라지면 피와 체액이 상체로 쏠리는 '유체 전이' 현상이 일어납니다. 얼굴은 퉁퉁 붓고 다리는 젓가락처럼 가늘어지는 이른바 '새 다리(Chicken Leg)' 현상이 발생하죠. 오래 걸은 다리로 팅팅 불어서 힘들었던 경험을 생각하면 상체로 피가 쏠리는 건 얼마나 더 힘들지 짐작이 되지 않네요.
제가 평소 즐겨 입던 탄탄한 청바지나 몸매를 잡아주는 슬림한 티셔츠를 우주에 가져간다면 어떨까요? 제 몸이 부을테니 밧줄처럼 제 몸을 옥죄는 고문 기구가 될 겁니다. 부어오른 피부는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져서 옷의 아주 작은 솔기 하나도 살을 파고드는 고통으로 다가올거구요. 옷핏을 부러워하며 1cm에 일희일비하던 저였지만, "수선비 좀 들더라도 내 다리에 피가 잘 통하고 편안하게 감싸주는 지구의 옷이 최고구나"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옷도 하나 편하게 못 입는 우주인의 일상을 보니 더 더욱 우주인의 일상이 멋져보이네요.
감압증이라는 보이지 않는 벽
우주복을 더 얇고 편하게 만들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감압증(Decompression Sickness)'이라는 무서운 존재 때문입니다. 갑작스러운 기압 변화로 혈액 속 질소가 기포로 변해 혈관을 막는 현상인데, 이를 예방하려면 우주복 안의 압력을 일정 수준 이상 유지해야 합니다. 집에있는 다리마사지기가 공기압 마사지기인데 물론 시원하기 위해서 하는 마사지기이지만 종종 센 압력이 주어질 땐 엄청 불편하던데 우주복을 입는내내 그 공기압을 느낀다는 것은 굉장히 불편할 것 같습니다.
우주인들은 이 옷을 한 번 입기 위해 서너 시간 동안 순수 산소를 마시며 몸속 질소를 빼내는 고통스러운 사전 준비를 거칩니다. 스파크 하나에도 폭발할 수 있는 고농도 산소 환경에서 땀 범벅이 된 채 코끝이 간지러워도 긁지 못하고 견뎌야 하는 그들의 인내심을 생각하면, 2,000억 원이라는 가격표가 조금은 이해가 가기도 합니다. 그리고 지금 저는 갑자기 코 끝이 간지러워져서 긁게 되네요. 이렇게 자유롭게 코 끝을 긁을 수 있는 것에 다시 한 번 감사드려야겠습니다.
최근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가 보여준 슬림하고 세련된 우주복을 보며 미래의 우주복은 조금 더 멋지고 슬림해서 우주인들이 편하게 활동할 수 있기를 기대를 걸어보기도 합니다. 기술이 발전하면 언젠가는 제가 좋아하는 부드러운 면 소재처럼 편안하면서도 안전한 우주복이 나올지도 모르겠죠? 하지만 꽤 먼 미래의 일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당분간은 오늘도 이 중력의 안락함을 즐기려 합니다. 우주인의 생활에 대한 시리즈를 적으면서 중력의 안락함에 대한 감탄을 자주하는 것 같네요. 이제 곧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앞두고 있는데 거창한 인테리어보다 가장 먼저 챙기는 건 '가장 편안하게 입을 수 있는 옷과 공간'입니다. 2,000억 원짜리 우주복보다, 샤워 후 갈아입는 헐렁한 면 티셔츠 한 장을 입고 침대에 눕는 행복이 훨씬 크다는 걸 오늘 느끼게 됩니다.
혹시 여러분도 오늘 아침, 입을 옷이 없어서 혹은 옷핏이 마음에 안 들어서 거울 앞에서 한숨 쉬셨나요? 그렇다면 우주복의 불편함을 한 번 떠올려보세요. 내 마음대로 옷을 고르고, 불편하면 언제든 벗어 던질 수 있는 우리는 사실 우주 어느 누구보다 자유롭고 화려한 삶을 살고 있는 중입니다.